72% 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 죽겠다.

 

철강 팀에 비상이 걸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진행하는 사업이 많은 팀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일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하는 일 외에 계약을 할 일도 잘 없었다. 그래도 항상 꼼꼼하게 자재를 검사하고 물량을 확인해서 배에 실었다. 눈에 띠게 드러나는 건 없지만 진득이 일을 하는 단단한 팀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그랬다.

 

동시에 세 군데의 회사에서 계약 내용을 바꾸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나쁠 것 없는 조건 변경에 받아 들였지만 그만큼 일할 시간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자재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 다니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새로이 계약하기 위한 미팅을 하고. 그 중간 중간 팀 자체 회의도 여러 번이었다. 회사에 붙어 있을 틈 없이 외근으로 시작해 외근으로 끝나던 나날에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끝났네.”

 

으그극, 요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자 뼈마디 여기저기 소리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어쩐지 허탈한 웃음과 함께 하품이 절로 나온다.

 

잠 온다.”

 

다 버틸만했다. 일 하느라 정신은 좀 없었어도 바쁜 건 좋은 거니까.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건 치명적이었다. 학교 열람실에 처박혀 공부하던 취준생 때도 하루에 꼬박 여섯 시간은 자곤 했다. 잠이 모자라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그래서 이번에 실수도 좀 많았다. 그로 인한 사수의 지적은 뼈아팠지만 당연해서 할 말이 없었다.

 

누적된 피로감이 몰아쳤지만 아직 주중이다. 주말까지는 실제로도 체감으로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거기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다. 급한 불만 끈 거라 이번 주도 야근에 집에까지 일을 들고 가야 한다. 이래서야 죽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얼굴이 씨~커멓네.”

…….”

 

석율의 남자치고 말간 얼굴에 빙글 미소가 걸렸다. 그러더니 금세 미간을 찌푸리며 눈썹을 마구잡이로 구부러트리고 퍽 다정하게 팔을 잡아온다.

 

아니, 철강 팀에 사람이 백기 씨 밖에 없나? 고 하얗던 피부가 아주 다크로 덮여서는 죽은 사람마냥. 많이 힘든가봐?”

저만 힘든 거 아닙니다.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다들 상태 안 좋아요.”

그래. 그렇더라. 다인 씨도 그새 살이 빠졌더라구~ 홍 대리님도 뭐,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고 과장님도, ? 근데 강 대리님은 딱히 변한 게 없더라. 평소랑 똑같아! 퍼펙트!”

그래서, 무슨 볼 일이예요?”

~ 백기 씨, 서운하게. 동기 걱정해 주잖아!”

 

, . 고맙습니다.

 

부러 티가 나게 형식적인 감사를 보내자 그에 또 다다다 말이 쏟아진다. 아침부터 기운 넘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컴퓨터를 부팅 시키면서 서류를 뒤적인다. 오며 가며 아는 얼굴들에 눈꼬리를 휘며 고개를 숙인다. 점심 먹을 시간도 아까워 팀원 전체가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운다. 가벼운 우스개 소리에 잠깐 숨을 돌리고 시선을 다시 모니터로 보낸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덧 밤 열 시였다.

 

이제 퇴근들 하자고.”

 

푹 꺼진 눈으로 미안한 표정을 한 과장님의 말에 다들 주섬주섬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와중에도 한 보따리씩 해야 할 일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서로의 모습에 실소를 터트리며 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데 갑자기 해준이 백기를 불러 세웠다.

 

…….”

열은 없네요.”

 

백기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마에 올려 진 손이 해준의 손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한 발자국 멀어지더니 툭 던지듯 말한다.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잠을 못 자면 금방 표가 나나 보죠?”

, .”

일단 한숨 돌렸으니까 오늘은 푹 자도록 해요. 그거 내려놓고.”

 

품에 안은 서류에 흘깃 눈짓을 주는 것을 보며 슬며시 내려 놨다. 이젠 밤에도 제법 더운 날씨에 상의를 팔에 걸치고 서류 가방을 들더니 똑바로 보아 온다.

 

피곤할 땐 잠이 보약입니다. 충분히 쉬어요.”

…….”

내일 봅시다.”

 

단정하다 못해 단호하다 싶은 구둣발 소리가 멀어진다. 아까 분명 열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혈관에 용암이 흐르는 기분이다. 손등으로 달궈진 얼굴을 식히면서 눈을 꾹 감았다. 눈물이 날 것도 같고 웃음이 날 것도 같다. 이마를 쓸어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까지 어깨에 매달려 있던 곰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기분이다.

 

저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뒷모습이 사람을 동하게 만드는 건 아는지.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 올 줄 몰랐다. 제 딴에는 크게 용기를 낸 사실이란 걸 저 순진한 부사수가 부디 모르길 바란다. 들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창피할 것이다.

 

아직은. 조그만 더.

 

어느 누구도 몰랐겠지만 해준은 겁이 많았다. 백 프로의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관계가 호전 된 후 온몸으로 보내는 호감을 느껴도 제동이 걸리기 일쑤. 거기엔 저를 오락가락 하게 만드는 백기의 행동이 한 몫 거하게 했다.

 

동기끼리 사수에 대해 얘기 할 때 별 말이 없다. 칭찬 받으면 강아지가 따로 없다. 하루 종일 수없이 곁눈질을 한다. 말 한마디 편하게 하지를 못하고 뻣뻣하게 굴더니 다른 곳에서는 잘만 웃고 다닌다. 항상 주눅 들어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너스레를 떤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패턴에 머리가 다 아팠다.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고무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백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분명한 건 이미 해준은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였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한 발 나가기 위해 나름대로 던진 승부수였다. 그리고 확인했다. 장백기는 강해준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자신과 같은 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알아보려면 또 많은 시간이 들겠지 생각하던 해준이 그제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내일.

 

내일 봅시다, 장백기 씨.”

 

내일도. 그 다음의 내일도. 계속.

 

 

 

 

 

 

 

 

 

 

 

 

 

 

 

 

 

 

 

 

+

 

받아 주세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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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켠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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