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 죽겠다.

 

철강 팀에 비상이 걸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진행하는 사업이 많은 팀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일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하는 일 외에 계약을 할 일도 잘 없었다. 그래도 항상 꼼꼼하게 자재를 검사하고 물량을 확인해서 배에 실었다. 눈에 띠게 드러나는 건 없지만 진득이 일을 하는 단단한 팀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그랬다.

 

동시에 세 군데의 회사에서 계약 내용을 바꾸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나쁠 것 없는 조건 변경에 받아 들였지만 그만큼 일할 시간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자재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 다니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새로이 계약하기 위한 미팅을 하고. 그 중간 중간 팀 자체 회의도 여러 번이었다. 회사에 붙어 있을 틈 없이 외근으로 시작해 외근으로 끝나던 나날에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끝났네.”

 

으그극, 요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자 뼈마디 여기저기 소리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어쩐지 허탈한 웃음과 함께 하품이 절로 나온다.

 

잠 온다.”

 

다 버틸만했다. 일 하느라 정신은 좀 없었어도 바쁜 건 좋은 거니까.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건 치명적이었다. 학교 열람실에 처박혀 공부하던 취준생 때도 하루에 꼬박 여섯 시간은 자곤 했다. 잠이 모자라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그래서 이번에 실수도 좀 많았다. 그로 인한 사수의 지적은 뼈아팠지만 당연해서 할 말이 없었다.

 

누적된 피로감이 몰아쳤지만 아직 주중이다. 주말까지는 실제로도 체감으로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거기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다. 급한 불만 끈 거라 이번 주도 야근에 집에까지 일을 들고 가야 한다. 이래서야 죽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얼굴이 씨~커멓네.”

…….”

 

석율의 남자치고 말간 얼굴에 빙글 미소가 걸렸다. 그러더니 금세 미간을 찌푸리며 눈썹을 마구잡이로 구부러트리고 퍽 다정하게 팔을 잡아온다.

 

아니, 철강 팀에 사람이 백기 씨 밖에 없나? 고 하얗던 피부가 아주 다크로 덮여서는 죽은 사람마냥. 많이 힘든가봐?”

저만 힘든 거 아닙니다.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다들 상태 안 좋아요.”

그래. 그렇더라. 다인 씨도 그새 살이 빠졌더라구~ 홍 대리님도 뭐,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고 과장님도, ? 근데 강 대리님은 딱히 변한 게 없더라. 평소랑 똑같아! 퍼펙트!”

그래서, 무슨 볼 일이예요?”

~ 백기 씨, 서운하게. 동기 걱정해 주잖아!”

 

, . 고맙습니다.

 

부러 티가 나게 형식적인 감사를 보내자 그에 또 다다다 말이 쏟아진다. 아침부터 기운 넘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컴퓨터를 부팅 시키면서 서류를 뒤적인다. 오며 가며 아는 얼굴들에 눈꼬리를 휘며 고개를 숙인다. 점심 먹을 시간도 아까워 팀원 전체가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운다. 가벼운 우스개 소리에 잠깐 숨을 돌리고 시선을 다시 모니터로 보낸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덧 밤 열 시였다.

 

이제 퇴근들 하자고.”

 

푹 꺼진 눈으로 미안한 표정을 한 과장님의 말에 다들 주섬주섬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와중에도 한 보따리씩 해야 할 일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서로의 모습에 실소를 터트리며 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데 갑자기 해준이 백기를 불러 세웠다.

 

…….”

열은 없네요.”

 

백기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마에 올려 진 손이 해준의 손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한 발자국 멀어지더니 툭 던지듯 말한다.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잠을 못 자면 금방 표가 나나 보죠?”

, .”

일단 한숨 돌렸으니까 오늘은 푹 자도록 해요. 그거 내려놓고.”

 

품에 안은 서류에 흘깃 눈짓을 주는 것을 보며 슬며시 내려 놨다. 이젠 밤에도 제법 더운 날씨에 상의를 팔에 걸치고 서류 가방을 들더니 똑바로 보아 온다.

 

피곤할 땐 잠이 보약입니다. 충분히 쉬어요.”

…….”

내일 봅시다.”

 

단정하다 못해 단호하다 싶은 구둣발 소리가 멀어진다. 아까 분명 열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혈관에 용암이 흐르는 기분이다. 손등으로 달궈진 얼굴을 식히면서 눈을 꾹 감았다. 눈물이 날 것도 같고 웃음이 날 것도 같다. 이마를 쓸어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까지 어깨에 매달려 있던 곰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기분이다.

 

저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뒷모습이 사람을 동하게 만드는 건 아는지.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 올 줄 몰랐다. 제 딴에는 크게 용기를 낸 사실이란 걸 저 순진한 부사수가 부디 모르길 바란다. 들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창피할 것이다.

 

아직은. 조그만 더.

 

어느 누구도 몰랐겠지만 해준은 겁이 많았다. 백 프로의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관계가 호전 된 후 온몸으로 보내는 호감을 느껴도 제동이 걸리기 일쑤. 거기엔 저를 오락가락 하게 만드는 백기의 행동이 한 몫 거하게 했다.

 

동기끼리 사수에 대해 얘기 할 때 별 말이 없다. 칭찬 받으면 강아지가 따로 없다. 하루 종일 수없이 곁눈질을 한다. 말 한마디 편하게 하지를 못하고 뻣뻣하게 굴더니 다른 곳에서는 잘만 웃고 다닌다. 항상 주눅 들어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너스레를 떤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패턴에 머리가 다 아팠다.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고무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백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분명한 건 이미 해준은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였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한 발 나가기 위해 나름대로 던진 승부수였다. 그리고 확인했다. 장백기는 강해준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자신과 같은 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알아보려면 또 많은 시간이 들겠지 생각하던 해준이 그제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내일.

 

내일 봅시다, 장백기 씨.”

 

내일도. 그 다음의 내일도. 계속.

 

 

 

 

 

 

 

 

 

 

 

 

 

 

 

 

 

 

 

 

+

 

받아 주세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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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켠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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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어느 날, 한 집에서 목 놓아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가 그리 울어대나 살펴보면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남자는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울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부은 걸지도 몰라요. 눈만 부었다 뿐입니까. 온 얼굴에 울음으로 인한 열이 올라 발갛습니다. 바르작거리며 손끝에 걸린 옷자락을 더 세게 움켜쥐는 남자에게로 멀리서 싸늘한 목소리가 날아듭니다.

 

김성준. .”

 

성준의 이름을 부른 기준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쩐지 화가 나 보이네요.

 

, 어요. , 놓을, 거에요.”

 

기준의 말에도 성준은 아랑 곳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붙잡고 있는 사람 품에 들어가 얼굴마저 감추네요. 그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발을 떼는 기준을 해준이 붙잡습니다.

 

뭐야?”

네가 백기씨 한 대 칠 것 같아서.”

 

해준은 성준의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차기준한테 김성준이 어떤 사람인데요. 해준은 성준에게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는 백기만 걱정됩니다. 난데없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처량한 신세가 된 제 연인을요.

 

……그 정도로 매너 없진 않아.”

언제부터 그런 걸 키웠다고. 세상 사람 다 그렇구나 해도 난 아냐. 가까이 가기만 해.”

 

해준과 기준의 눈에 불꽃이 튑니다. 분명 삼십 분 전만 해도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백기는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별 거 없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 다니던 시설에서 백기와 성준이 친해졌고 성준을 후원하는 착하다는 형이 기준이었고 그의 사촌이자 백기의 애인이 해준이었을 따름입니다. 그런고로 단순히 친하지 않은 걸 넘어 서로를 싫어하는 기준과 해준은 성준과 백기 때문에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죽어도 싫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림이 좋았거든요. 순진한 아기 고양이랑 귀여운 강아지가 같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죠. 닮은 얼굴 둘이 한껏 눈웃음을 짓는 순간, 해준과 기준은 파이팅 넘치게 손을 부딪치며 휴전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기준과 성준의 집으로 왔습니다. 만날 때마다 백기를 반기는 마음을 숨기지 않던 성준은 여느 때와 같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처럼 여기저기 곳곳을 구경시켜 주는 이끌림도요. 성준이에게 팔을 잡힌 채로 집안을 구경하던 백기가 살포시 웃었습니다. 이런 동생이 있었다면 아마 팔불출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말도 예쁘게 하고 싱그러운 미소에 하나부터 열까지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 , 목을 가다듬은 백기가 입을 열었습니다.

 

기분 좋아 보이네, 성준이.”

, 좋아요. 백기 형, 있어서, 좋아요.”

나도.”

 

살살 쓰다듬는 머리칼이 보들보들 합니다. 마주보며 헤헤 웃음을 흘리는 두 사람을 뒤에서 보는 시선이 따뜻합니다. 간만에 눈 정화를 하며 힐링 받는 기분인가 봅니다. 한 쪽 입꼬리만 올려 웃는다거나 웃는지 마는지 알 수 없게 미소 짓는 사람들답지 않아 조금 무섭네요.

 

아무튼 그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티타임도 즐거웠고요. 부드럽고 편안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건 낮잠 이후입니다. 아닌가. 아마 그 전부터 일지도 모르겠네요.

 

깜빡깜빡 졸음이 밀려오는 눈의 성준이 재워 달라고 칭얼거렸습니다. 백기한테요. 당연히 자기에게 올 거라고 생각하며 보던 서류를 내려놓던 기준이 움찔했죠. 심상찮은 기운에 해준도 손에 든 책을 덮었습니다. 백기와 성준은 쎄한 느낌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성준의 방으로 들어갔어요.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옆에 누워 가슴을 토닥이다가 함께 잠들었습니다. 그러고 일어나니 집 안의 공기는 마치 시베리아 벌판 같았어요.

 

무언가 크게 잘못한 것 같아 눈치를 보는 백기를 이끌어 해준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성준은 가지 말라고 떼를 썼어요. 성준이는 백기를 참 많이 좋아해서 이대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백기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애원을 했어요. 그 때였습니다.

 

.”

 

성준이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의 기준이었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성준이 잡고 있는 백기의 손만 보고 있었죠.

 

, 거예요. 백기 형이랑 놀아요.”

장백기 씨는 갈 거야. 그리고 이제 못 만나.”

……? 만나요. 매주 토요일에, 만나요.”

성준이는 이제 거기 안 가. 그러니까 만날 수 없어.”

초록 집에, 안 가요? 그럼 백기 형, 우리 집에 불러요.”

안 불러. 성준이가 불러도 못 들어 와.”

왜요? 백기 형, 좋아요.”

 

성준이의 말이 끝나자 해준이 앓는 소리를 냈어요. 그러면서 작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지, 중얼거렸어요. 백기는 아직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기준은 정말 화가 났어요. 사실 기본적으로 성준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싫었거든요. 그나마 백기가 성준이랑 닮고 옆에 강해준이란 싫지만 미더운 놈이 있어서 참고 있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성준이가 자기를 영순위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겁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구요.

 

좋아요. 백기 형 좋아요. 가지 말아요…….”

 

저런 말도 싫습니다. 어떻게 기준 본인이 아닌 사람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단단히 가로 막고 선 해준만 아니라면 벌써 백기를 떼놓고 쫓아냈을 거예요.

 

애야?”

 

거기에 기름을 들이붓는 해준을 기준이 노려봅니다.

 

좀 빠져.”

백기씨 데리고 안전하게 나가기 전까진 택도 없어.”

여기가 이라크야?!”

 

기어코 큰 소리가 났어요. 성준이가 놀라서 딸꾹질까지 할 정도로요. 백기가 그런 성준이를 도닥입니다. 물론 본인도 지금 잔뜩 겁먹은 상태라서 별 소용은 없지만요.

 

왜 소릴 질러?”

네가 소리 지르게 했거든?”

그렇게 고상 떨더니. 별 수 없네. 무식하게.”

무식?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 모르겠네.”

. 차기준, .”

. 강해준. 내가 너보다 먼저 태어났어.”

그래서. 형 대접 받고 싶어? 나이도 같은 게.”

 

형제 싸움은 언제나 유치하죠. 그런데 그 선을 넘어 위협적인 분위기가 만들어 집니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주고받을 듯 가깝게 붙어 서서 으르렁 거리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요. 태어나면서부터 비교 당하고 경쟁하며 지내던 시간들이 다시 떠오르나 봅니다.

 

근데 그러면 뭐합니까. 시작도 못하게 됐는데요.

 

싫어!!”

 

곧 달려들 기세로 서있던 해준을 성준이 밀쳤습니다. 그 후 바로 기준에게 안겨서 히잉 울음소리를 냅니다.

 

성준아?”

싫어! 해준이 형, 미워! 형아 때리지 마!”

 

아직 손도 안 댔습니다. 당장이라도 기준과 한 판 할지도 몰라서 경계하고 있던 터라 넘어지진 않았지만 해준은 좀 황당했어요. 이게 지금 누구 때문에 시작됐는데 싶어서 기도 찼지요. 더군다나 기준의 저 웃는 얼굴이, , 꼴 보기 싫었어요.

 

! 해준이 형, 보기 싫어!!”

들었지? 우리 성준이가 너 나가래.”

 

이겼다는 비웃음이 다시금 열 뻗치게 만들었지만 꾹 눌러 참습니다. 그리고 놀라서 입만 헤 벌린 백기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두 번 다시 안 와.”

 

문이 닫혔습니다. 상황도 끝났습니다. 기준은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성준이 얼굴은 시무룩하네요. 이유를 알 것 같아 기준이 얕은 숨을 내쉬었어요.

 

……해준이 형, , 많이 났어요?”

났으면?”

 

이젠 흡사 울 것 같은 얼굴입니다.

 

백기 형.”

 

차마 말을 더 잇지도 못 하네요.

 

……성준이 초록 집에 가면 백기 형 또 볼 수 있어.”

성준이, 초록 집, 가요?”

. .”

 

기준의 말을 들은 성준의 금세 생글생글 웃습니다. 그렇게 좋은가 싶어 마뜩잖은 기준입니다.

 

아까 낮잠 잘 때 왜 형이랑 같이 가지 않았어?”

 

계속 묻고 싶었던 말을 간신히 꺼냅니다. 솔직히 자존심 상해서 물어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 일이 발단이다 보니 꺼내지 않을 순 없었어요. 한껏 찌푸려진 기준의 미간을 살살 쓸며 성준이 입을 열었어요.

 

형아, 바빠요. 방해, 하기 싫어서.”

 

최근 많이 바빴습니다. 새벽같이 나가서 달을 보며 들어오곤 했죠. 수험생도 아닌데 하루에 네 시간도 채 자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눈에 피곤이 가득했고요. 오늘도 백기와 성준이 노는 동안 해준은 여가를 즐겼지만 기준은 일을 했습니다. 의외로 눈치 빠른 성준이가 그걸 모를 수 없었던 겁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으며 기준이 성준의 목에 얼굴을 묻었어요.

 

괜찮아. 성준이가 먼저야.”

성준이, 1?”

그래. 성준이가 형한텐 언제나 1등이야. 그러니까,”

 

응석부려도 돼.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성준이는 알아들었어요. 그런 기준이 좋아서 마음이 간질간질 합니다. 더 꼭 끌어안아 봅니다. 그 품에 가득 안기며 기준이 웅얼거렸습니다.

 

성준아. 형한테 뭐 더 해줬으면 좋겠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 얼굴에 도장을 찍습니다. 성준이는 지금 무지 행복해요!

 

하지만 백기는 그렇지 못 했습니다.

 

속상합니다.

? 뭐가요.”

 

조수석에 앉아 해준의 팔을 살살 문지르며 대답합니다.

 

밀칠 정도는 아니잖아요.”

 

거기에 웃음이 터져 저도 모르게 크게 웃는 해준을 샐쭉 노려보네요.

 

맞아 놓고선 뭐가 좋다고 웃는 겁니까.”

그게, , 맞은 겁니까?”

아무튼요.”

 

사랑스럽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아까 기준에게 맞선 건 잘한 일입니다.

 

집에 가서 치료해 줘요.”

많이 아파요?”

멍들지도?”

정말요? 성준이가 그렇게 세게는 안 했는데.”

 

성준이 역성을 들면서도 걱정이 되나 봅니다. 의외의 수확이에요. 이런 건 나쁘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지만 차기준이 재수 없어서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 성준이에겐 다음 주에 좋은 화구를 사다주면 되겠죠.

 

아니면,”

……대리님!”

이거면 나을 것 같군요.”

 

가볍게 부딪친 입술에 백기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릅니다. 그걸 답삭 문 해준이 고개를 틀어 가까이 입을 붙였어요.

 

갑시다. 우리 집에.”

 

 

 

 

 

 

 

 

 

 

 

 

 

 

 

 

 

 

 

 

+

 

 

처음에 뭘 쓰려고 했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막 씀.

누가 기준성준 좀 써주세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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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 님의 생일 축하 및 티스토리 초대장 감사 선물입니다!!

 

 

 

 

 

 

 

 

 

 

 

 

 

 

 

 

 

 

 

 

그 날은 뜻밖의 외근이 있던 날이었다.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당신을 데려가서 인수인계를 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 탓에 입었던 코트가 더워서 한 쪽 팔에 걸쳐야만 했다. 간간이 맡은 일에 대한 당신의 질문에 답하며 조금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빠른 내 걸음에 맞춰 대화는커녕 따라오기 바빴을 것을 알아 기분이 새로웠다.

 

팀에 적응한 당신은 빠르게 발전했다. 일처리가 능숙해 지면서 작은 일도 맡기기 미심쩍었던 시간을 지나 어떤 일이든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신뢰를 불러 왔다.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당신이 가진 스펙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돌아오기는 했지만 당신은 걸어야 할 길 위에 다시 섰다.

 

꽃처럼 피었구나.

 

분홍빛 벚꽃이 갑자기 분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중에 당신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얀 피부에 말간 웃음을 띠우며 날리는 꽃 속에 서있는 모습을 보니 그 생각만이 절로 떠올랐다.

 

이전과 바뀐 당신의 상황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당신의 미소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몇 날 며칠 동안 떨어지는 꽃과 당신이 서있는 장면을 꿈꾸어야 했다.

 

그리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당신과 단 둘이 차를 타고 있었다. 회사에서 내준 차를 끌고 포항으로 출장을 가는 중이었다. 처음 가는 출장에 당신은 묘하게 들뜬 표정이었다. 한편으론 뭔가 더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인 양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그게 퍽 귀여워 소리 내어 웃으니 동그란 눈이 따라 붙었다.

 

얼굴이 굉장하네요.’

?’

목숨이라도 건 것 같습니다. 그냥 출장일뿐인데요.’

…….’

 

당신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후 다른 대답 없이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대하는 당신의 조심스러운 태도 중 하나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무릎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나를 보는 시선이 따뜻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해요. 그러니, 특별히 더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는 말의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함이 고개를 들었지만 당신의 목소리에 이내 가라앉았다.

 

감사합니다.’

 

닿았다. 당신에게 내 뜻이 곧바로 갔다. 내가 잘 말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잘 알아들었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얼굴에 전혀 표가 나지 않아 어쩐지 속상하기도 했다. 그즈음의 나는 당신이 내 태도 하나하나를 오해할까 걱정하곤 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포항에서의 일은 순조로웠다. ‘너무라는 표현을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끝났다. 찬란한 4월의 햇살이 따스했고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전화로 하는 간단한 보고의 끝에 과장님은 퇴근을 말했다. 서울까지 올라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편의를 봐준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충동적이었다. 차에 탈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만약 당신이 창문 밖 벚꽃을 보고 있지만 않았어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을 거다.

 

군항제 기간이라는 군요.’

벌써요?’

 

당신은 토끼 같은 앞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입을 헤 벌렸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 두 개가 눈에 보이면 참을 수 없어지는 순간이 많은 나였다. 그래서 입을 맞출 적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아직까지도 비밀이다.

 

.’

한번도 가본 적 없습니다.’

그래요?’

. 사람 많을 것 같고, 치이기 싫고.’

경치는 끝내준다더군요.’

그렇다더라고요.’

 

단순히 대화를 하려고만 했었다. 그렇게 웃는 건 지금도 반칙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갈까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나를 향했다. 간질거리는 속에 핸들을 힘껏 잡았다.

 

?’

진해면 코앞입니다. 구경 가겠어요?’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당신이 우리나라 지리에 밝진 않아 몰랐겠지만 포항에서 진해는 코앞 운운할 거리가 아니었다. 긴장으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거절에 대한 방어책은 생각하지도 못 했다. 분명히 우스워 보일 일인데 뻔뻔한 낯짝은 일말의 틈도 허락지 않았다. 그에 당신이 지레 겁먹고 물러설까 걱정이 되었다.

 

…….’

 

벚꽃 잎보다 붉게 물든 볼이 정말로 예뻤다.

 

도착하면 12시가 넘겠는데요.”

 

입 안 가득 넣었던 면발은 이내 목으로 넘어간 모양이다. 비어진 그 속으로 내 혀를 넣고 간질이고 싶다 말하면 당신은 그 때만큼 발갛게 달아오를 거다. 보고 싶다.

 

서울에서 진해는 머니까요.”

그래도 좋습니다.”

 

대리님이랑 여행이라니.

 

퇴근 하자마자 출발해서 아직도 양복 차림이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도착하면 무엇을 할지 생각하느라 먹던 우동도 그대로다. 사귀기 시작한 후로 나는 당신과 뭐든 맞춰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 역시 식사를 멈추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따라 간다.

 

그 날, 당신에게 진해에 가자고 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1년 간 보아 온 당신의 모습을 전혀 몰랐을 테니까. 나 아닌 누군가가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하다. 끔찍한 상상에 부르르 몸을 털었다. 내 행동에 의아함을 품은 눈가를 살짝 쓰다듬었다.

 

먹어요. 식으면 맛없습니다.”

!”

 

손길이 멀어지자 환하게 웃어 온다.

 

 

 

 

 

 

 

 

 

 

 

 

 

 

 

저요,”

 

이제는 어느 휴게소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벤치에 앉았다. 새까만 하늘을 보며 조용히 홀짝이던 당신이 코를 찡긋거렸다.

 

“1주년 기념 여행이 진해라서 좋습니다.”

멋대로 정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그게. 그러니까…….”

 

손안에 컵을 빙글빙글 돌리며 이어지는 말이

 

, 여행. 이었잖아요.”

…….”

대리님이, 손도 잡아 주고.”

 

이렇게나 어여쁘다.

 

맞잡은 손에 깍지를 끼며 나를 따라 온다. 숨이 차는지 눈썹이 모인다. 힘을 줘 가까이 당기면 살포시 휘어지는 입술이 달다.

 

내 인생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날까 싶다. 아니,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생을 살면서 두 명이나 만나고 싶지 않다. 당신이면 충분하다. 당신 밖에 없다. 오로지 당신만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당신으로 가득 차고 싶은 나를 질려 할 때까지 보여주고 싶다. 그러지 못해서 항상 부족하다.

 

하고 싶어.”

…….”

 

이렇게 잠깐의 침묵에도 마음을 졸인다.

 

……그런 거,”

…….”

망설이지 마세요.”

 

그러면 당신이 나를 끌어당긴다.

 

 

 

 

 

 

 

 

 

 

 

 

 

 

 

 

 

 

 

 

+

 

 

그런데 생일은 이미 지나고……. 죄송해요, 늦어서8 - 8

 

 

 

 

 

 

 

 

 

 

Posted by 켠公
,

 

 

 

 

 

 

 

 

 

 

 

 

 

 

 

KM 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상황은 임의대로 만들었습니다. 엠프렉 언급 있습니다.)

 

 

 

 

 

 

 

 

 

 

 

 

 

 

 

 

 

 

 

 

헤어져 주세요.

 

백기는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하고 침착했다. 아주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끝이 어떻게 될 지 빤한데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이 올 때까지 그냥 마음 편히 시간을 보냈다.

 

꿈처럼 환상적인 나날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좋았다. 손을 내밀면 마주 잡아 주었다. 웃음을 비치면 미소가 돌아왔다. 뜨거운 몸을 끌어안아 주기도 했다.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는 아니지만 그들만큼 해주었다. 뭐든. 정말 뭐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동안 욕심껏 투정도 맘껏 부렸고 사랑도 넘칠 정도로 실컷 받았으니 이제 되었다. 걸릴 것 없이 쭉 해나갈 수 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다. 두 사람의 마음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니까. 그러니까,

 

헤어져 주세요.”

……왭니까.”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해준이 말했다. 데굴데굴 백기가 눈동자를 굴린다. 흰자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속눈썹 그늘이 퍽 보기 좋다.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눈에는 찬다고 해준은 생각했다.

 

결혼, 해야 합니다.”

 

망설인 끝에 말한다. 백기는 정확히는 아니지만 해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소린지 서로 알만한 이야기인데 어쩐지 어긋난 기분이다.

 

조금 빨랐던 걸까. 사귄 지 3, 이쯤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꺼낸 말인데 시기를 잘못 잡은 건지도 모른다. 아직 감정이 다하지 않았으니 성급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뭐라고요?”

 

조금 높아진 언성으로 묻는 말에 백기가 눈을 깜빡였다.

 

결혼해야 한다고…….”

 

하아-.

 

해준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올린 숨을 입 밖으로 뱉었다.

 

이해 할 수가 없군요.”

……?”

 

이제는 확연히 기분 나쁜 티를 내며 해준이 말을 이었다.

 

결혼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와 헤어지자니, 한다면 나랑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왜 놀랍니까? 장백기 씨, 혹시 연애 따로 결혼 따로 라는 사람입니까?”

 

백기는 해준의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준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준이 고백을 해오기 한참 전에 그가 자신의 동기들과 가볍게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회사 일로 시작해서 결혼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를 들으며 백기는 조금 울적해 했었다.

 

결혼 안 해. 인생 누구한테 저당 잡히기도 싫고 누군가를 책임지기도 싫어. 사랑한다는 감정이 언제까지 갈 것 같아? 그냥 필요하면 연애 정도만 하며 사는 게 낫지.’

 

그 때 백기를 씁쓸하게 했던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저당, 책임이란 말보다 그 말 자체가 그랬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함께 일상을 보내며 살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고백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그런 일까지 신경 쓰나 싶어 고개를 저었지만 참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고백 받던 순간에도 백기는 그저 멍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하나의 감탄사였다.

 

.

 

분명 행복하겠지만 결국 평생을 같이 있을 순 없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해준과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자신. 그로 인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웃었다. 해준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이미 정해진 끝이라면 포기도 쉬웠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사랑했다.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거기에 대한 보상처럼 해준은 저에게 달게 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렇게 정신 나갈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즈음 백기의 부모님이 사진을 보냈다. 원체 부끄럼과 쑥스러움이 많아 연애 얘기를 하지 않는 본인들 자식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임신이 가능한 남자의 몸은 모순되게도 수정과 착상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백기와 비슷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일찍 결혼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가 가능성이 많다고 다들 생각했다. 백기의 부모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의 뜻과 다르지 않은 삶을 꿈꾸던 백기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준은 결혼을 싫어하니 말을 꺼내도 소용이 없다. 알고 있었던 만큼 실망이나 좌절은 없다.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대리님은 결혼 생각 없으시잖습니까?"

 

이건 아니다. 백기가 상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니었다. 분명하게 무얼 예상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모습은 아니었다.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압니까?"

"예전에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 안 하신다고, 그냥 연애만 하며 살겠다고."

"그게 언젠데요."

", 삼 년 전 쯤……."

 

대답을 들은 해준이 왼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조선 시대 유물 발굴 합니까. 그런 옛날이야기를."

"아니, 대리님."

"해준 씨."

 

자못 못마땅하다는 얼굴이 백기를 향했다.

 

"둘만 있을 때는 이름 부르라고 했잖아요."

"……해준 씨."

"낫군요."

", 결혼이 하고 싶습니다. 아이도 가지고 싶고요. 함께 살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헤어져 달라?"

 

해준의 말에 백기가 입을 다물었다. 들끓는 속을 어떻게든 잠재우며 해준이 입을 열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이니 버리고 딴 사람이랑 살림을 차리겠다는 거네요. 내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장백기 씨?"

"버리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이지."

 

말을 뱉으며 해준이 혀를 찼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하고 싶은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곤란한 기색으로 눈을 내리 깐 저 말간 얼굴이 죽도록 미웠다.

 

"저 해준 씨 좋아합니다. 아니,"

"……."

"사랑합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해준의 눈 한가득 들어왔다.

 

"버리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가끔은, 결혼 안 하고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 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바라던 것을 쉽게 놓을 수도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기다리고 계시고요. 그거, 모른 척 할 수 없어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요."

"그래서요."

"……저도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란 말예요!!"

 

금방이라도 찢어죽일 듯이 저를 보는 해준에게 기어코 백기가 소리를 쳤다. 어미에 붙은 울먹임을 삼키며 고개를 숙인다. 그에 입술을 짓이긴 해준이 윗옷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백기의 왼손을 끌어당겼다.

 

백금으로 되어 있는 고리의 중앙에 자리 잡은 투명한 다이아가 반짝였다. 보석을 중심으로 화려한 장식이 음각되어 있는 것이 척 보기에도 꽤나 값비싸 보였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는 백기에게 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모를 겁니다. 그런 나를,"

"……."

"버리려고 했던 겁니다. 당신은."

 

초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의 강변 벤치. 일부러 골라 엑셀을 밟았던 저를 생각하며 해준이 헛웃음을 풀었다.

 

"마침 내일이 주말이로군요."

 

멍청하게 입을 벌린 백기가 해준을 보자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부모님께 전화하세요. 내일 사윗감이 인사하러 간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끝낸 해준이 백기의 손목을 그러잡고 차로 걸어갔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뒷모습이 든든하고 단단해 백기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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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비루먹은 이내 재주는 여기가 한계였습니다. (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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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켠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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